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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마다 들리는 살 빠지는 소리

하수의 일상 | 2010. 2. 8. 11:31 | Posted by 하수

아침마다 살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자고있는 아이를 깨운다.
아이가 소변보는 동안 이불을 개고 주방으로 나오면 아이가 밥상을 안방 중앙으로 놓는다.
갓 지은 따뜻한 밥을 푸고 국과 반찬을 내어 아이와 맛있게 아침을 먹는다.
아침 먹는 속도는 내가 한참 빠르다. 내가 먼저 먹고, 나부터 욕실에서 샤워를 한다.

수염도 깎고 머리도 감고... 홀아비 냄새가 절대로 안 나도록 엄청 노력한다.^^
다 씻어 팬티만 입고 욕실을 나오면, 아이는 이미 밥을 다 먹고 EBS 방송을 보고 있다.
내복과 속옷 모두 세탁망에 넣으라고 하고 아이의 칫솔에 치약을 짜준다.
아이가 이를 닦는 동안 잽싸게 안방으로 와서 아이가 입을 옷을 꺼내고 다시 욕실로...



평일 아침마다 아이를 샤워시킨다. 요즘 철엔 아이의 머리를 월요일 아침마다 감긴다.
머리를 감기는 건 시간만 좀 더 걸릴 뿐,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힘든 건 바로 머리 말리기다.
일단, 욕실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대충 닦은 후에 젖은 몸도 닦아준다.
안방으로 들어와 속옷, 내복, 양말을 신기고 겉옷을 입힌 후에 머리를 다시 잘 닦아준다.
수건으로 물기를 최대한 없앤 후 드라이기를 이용해 덜 마른 곳이 없도록 잘 말려준다.
머리를 곱게 빗기고 머리 묶는 예쁜 고무줄로 한 갈래 머리를 묶어준다.

아이의 손톱을 보니 조금 길어서 손톱 깎는 가위로 손톱을 깎았다.
아이의 손에 로션을 뿌려주며 거울을 보고 잘 바르라고 이른다.
겨울철엔 입술이 잘 트니까 입술에 바르는 스틱으로 아이 입술에 발라줬다.
아이 외투를 입히며 신발을 신으라고 이른 후 오랜만에 집 안의 모든 창문을 열었다.
사실, 지난 금요일 아이가 늦장을 부려 어린이집을 못 갔다.
그러니까 지난 목요일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보일러를 계속 틀은 셈이다.
2010/02/03 - 이번 달도 적자, 도시가스요금 12만 원

아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날씨가 포근하여 아이에게 마스크와 장갑은 안 끼웠다.
간만에 아이의 따뜻한 맨손을 잡고 어린이집을 향했다.
며칠동안 아이와 방콕하며 그렇게 말을 많이 했는데도 또 길에서 수다를 떤다.
사내아이만 키워본 분들은 이런 느낌 잘 모를 것이다.
머리 감기고 말리는 고생, 딸아이가 떠는 수다 일일히 대꾸해주는 고생...^^
이런 고생으로 은근히 살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난 행복하다.

이면도로를 걷고 있는데, 어느 트럭이 옆에 서며 내 딸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아이 어린이집 한 친구의 엄마였다.
"아이 태우세요, 제가 바래다줄께요.", 웃는 얼굴로 "됐습니다. 먼저 가세요~."
마음은 고맙지만, 난 어린이집을 바래다줄 때 차를 이용하는 것을 극구 반대하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의 위험 때문이다.
앞에서 또 한 고급 승용차가 섰다. 아이들의 엄마 둘과 그 아이들이 차에서 내렸다.
걸으며 한참을 생각했다.
'저렇게 고급 승용차 타면서 시립어린이집을 어떻게 보내지?'
'명의를 다른 사람으로 해놨나?'.....

어린이집에서 아이의 손을 놓으며 인사를 나눴다. "재밌게 지내~", "네~~~."
짜식... 며칠 동안 방콕하느라 친구들이 그리웠는지 뒤도 안 돌아보고 계단을 올라갔다.
날씨가 포근해서 간만에 약수터 좀 올라갈까도 생각했는데, 하늘을 보니 비가 올 것 같다.
운동은 날 좋을 때 하고, 오늘은 청소나 빡세게 해야겠다.

집으로 돌아와 찬물에 설겆이를 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간만에 즐겨보는 여유로운 시간이라 커피 한 잔 타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 이렇게 여유를 즐길 시간이 사실 없다.
이 시간이면 또 점심을 슬슬 준비하여야 하니까...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다음 달부턴 살 빠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릴 것 같다.
홀아비가 무슨 낙으로 사냐고? ㅎㅎㅎ 아이 키우는 낙으로 살지...^^


<추신>

어제 일요일 낮, 옆집에 사는 통장양반이 현관문을 노크했다.
출산장려 정책에 서명 어쩌구 저쩌구...
"에효... 저 홀아비인 것 모르세요? 혼자 사는 것 뻔히 알면서 뭐 이런 서명을..."
통장인 그 여자는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사실 그 양반도 아이가 하나만 있는 것으로 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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