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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죄지 왜 사람을 미워하나?

하수의 일상 | 2010. 9. 15. 11:13 | Posted by 하수


난 찢어지게 가난하지는 않지만 88만원 세대를 엄청 부러워하는 사람이다.
금융과 블로그 소득 전부를 포함해서 한 달의 수입은 고작 50만 원 초반대다.
일단,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는 공과금을 계산해본다.

10일 - 건강보험 : 38,870원, 도시가스 : 65,000원
15일 - 내 실비보험 : 32,000원
20일 - 유선방송 : 6,460원
21일 - 휴대전화 : 18,000원 (다른 전화는 없다)
23일 - 카드 : 생활비에 포함되므로 별도 계산
25일 - 전기 : 28,000원, 인터넷 : 18,130원, 딸아이 실비보험 : 9,900원
말일 - 내 종신보험 : 112,940원 (딸아이도 옵션으로 포함)

도시가스와 전기요금은 1년 평균치로 계산했고 합계는 329,300원이다.
자동차세와 차보험의 합은 대략 34만원이니 12월로 나누면 28,300원이고, 딸아이의 방과후교실 교육비도 매달 35,000원으로 나가니까 매월 공과금의 총합은 거의 40만 원이다.
사실, 수도요금 같은 건 계산에 넣지도 않았으니 40만 원이 훌쩍 넘게 된다.

지금 사는 2천 5백만 원짜리 전셋집의 구조가 좀 웃기다. 현관문을 열면 바로 앞마당이고 몇 걸음 걸으면 대문이고 4차선 도로다. 볕이 안 좋고 천장이 높아 여름엔 시원한데 겨울엔 무지 춥다. 그래서 다른 집보다 가스비가 많이 나온다. 딸아이도 매일 샤워시키니까...

자동차를 팔라고? 잔고장도 많고 기름값도 비싼데 나라고 차를 팔 생각을 안 했겠나?
나와 딸아이만 생각하면 벌써 처분했을 텐데 부모님과 혼자 사시는 작은아버지를 가끔씩 모셔야 할 때가 있어서 애물단지 97년식 자동차를 속 시원히 처분하지 못하고 있다.


부모님 댁과 가까운 곳에서 사니 아침마다 반찬을 들고 오시는 엄마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막내 아들이 홀아비가 된 게 부모님 탓도 아닌데 너무 불효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버스를 두 번 타야만 올 수 있는 이곳으로 3년 반 전에 이사를 오면서 완전한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엔 지인의 도움을 받아 프리랜서로 설계쪽 일을 했었는데 동시에 딸아이도 키우며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 일도 제대로 안 되고 아이에게도 소흘해질 수 밖에 없었다.
몇 달이 지나 딸아이가 유행성 결막염에 걸려 2주 동안 통원치료를 해야 했는데, 도저히 일에 매진할 수가 없어서 계약금을 물고 일을 그만두었다. 그떄부터 난 전업주부가 됐다.

사실, 두 개의 실비보험은 계획에 없었는데 몇 달 동안 아이의 엄마가 양육비로 15만 원씩 준 적이 있어서 그때 보험을 들었다. 양육비를 계속해서 주면 좋으련만 그녀의 고질병인 우울증이 자주 돋아 지속적인 직장생활이 어려우니 지금까지 양육비를 지원받지 못한다.

딸아이가 제 앞가림을 할 정도의 나이가 되면 나도 일을 하겠지만 가정에 소흘하긴 싫으니 파트타임으로 아르바이트나 할 예정이다. 그때까지 만이라도 양육비를 줬으면 좋겠는데, 그녀는 그녀의 부모님댁에 얹혀 살며 뒹굴뒹굴 놀고 있다. 딸아이도 보고 싶어 해서 지난 일요일 밤에 호출했고 나와 아이가 평상시에 어떻게 사는지 진솔하게 보여줬다. 사실 한 달에 한 번씩 불러서 아이와 놀게 했는데, 그때마다 요리를 주문해서 먹으니까 만날 그렇게 사는 줄로 알았는지, 며칠 동안 평일에 내가 조촐하게 만드는 음식을 먹고 진짜 검소하게 사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바가 큰지 조금 아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양육비가 오기 전까진 10만 원 정도가 나와 내 딸아이의 한 달 생활비가 되어야 한다.
흥청망청 쓸 수 있는 상황이 절대로 될 수가 없다.
물론, 여름엔 가스비가 아주 적게 나오니 좀 여유롭지만 그렇다고 팡팡 쓸 수는 없다.
한겨울엔 적자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12만 원 넘게 가스비가 나올 땐 정말...
2010/02/03 - 이번 달도 적자, 도시가스요금 12만 원

친가쪽으로 집안이 모두 기독교를 믿는데 나와 딸아이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어느 날 엄마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도 이제 교회 좀 다니지 그래?"
그냥 못 들은 척을 하려다가 날 계속 쳐다보시길래 대답을 했다.
"엄마, 교회도 있는 사람이 다니는 거야, 나 지금 헌금낼 돈도 없어..."


어제 쓴 글에 익명의 댓글이 달렸는데 내가 사는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다.
2010/09/14 -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할인금액


그래... 남이 보기엔 지지리 궁상 떨며 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가난하니까...
가난한데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냐? 아끼는 것 말고 무슨 다른 방법이 따로 있냐?
물론 판매자 입장에선 나 같은 사람을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이 세상에 판매자가 많냐?
구매자가 많냐? 어느 게 주관적이고 객관적인지 왜 구분을 못하나? 아끼는 게 무슨 죄냐?
마트에서 반기라고 마트에 가나? 물건을 사러 가는 거지... ㅡㅡ;;

저 사람은 한 달에 생활비로 얼마나 쓰며 저렇게 주장하는지 진짜 궁금하다.
사실 저 댓글은 처음 글이 아니었다. 같은 사람이 지우고 다시 쓴 글이다.
그 지웠던 댓글도 난 읽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3천 원, 4천 원도 현금 안 쓰고 카드를 쓰는 게 마음에 안 든다.
그렇게 깝깝하게 사는 네 성격 때문에 아이의 엄마가 우울증에 걸린 것이다...


때마침 아이의 엄마가 안방에 누워있길래 불러서 그 글을 보여줬다.
그녀의 한 마디, "나 그것 때문에 우울증 걸린 게 아닌데..."
혹시나 같은 IP의 다른 댓글이 없나하고 살폈더니,



익명이지만 이렇게 훈훈한 댓글을 써주셨던 분이다.
참... 어떻게 한 사람이, 서로 입장이 다르다고 이렇게 돌변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ㅎㅎㅎ 그럼 그렇지 이 글에도 또 익명의 댓글이 달렸다. 내 반응이 궁금하셨나? ^^


이젠 IP차단을 안 하려고 했는데 이웃 보기에도 민망해서 어쩔 수 없이 차단을 했다.


가난이 죄지 왜 사람을 미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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