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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없는 홀아비의 고단한 하루

하수의 일상 | 2010. 3. 18. 11:06 | Posted by 하수


오늘 아침 6시 30분 쌀을 씻어 밥통에 얹히고 취사버튼을 눌렀다.
7시쯤 카레라이스를 만들기 위해 재료를 다듬고 요리를 시작했다.
아침부터 좀 뻑뻑할까봐 어묵 한 장 잘게 썰어 계란 하나 풀고 시원한 국물도 끓였다.
7시 30분 딸아이가 알람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몽롱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며...

큰 그릇에 갓 지은 밥과 카레, 엄마표 숙주나물, 김치 국물을 넣고 비비며 국을 푸었다.
난 아이와 식사를 할 땐 TV를 안 켠다. 오전 시간엔 거의 TV를 켜지 않는 편이다.
아이와 서로 마주보고 숟가락 부딪히며 국물도 떠먹고 아침밥을 맛있게 먹었다.

오늘은 아이 머리 감는 날. 요즘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머리를 감기는 것 같다.
딸아이의 머리가 길어 평소에 묶어주기 때문에 샴푸만 쓰고 린스는 하지 않는다.
머리 감기는 시간은 별로 걸리지가 않는데 긴머리 말리는 건 진짜 생 노가다다.
아이 머리 말리는 동안 아이는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평소에 노래를 잘 부르는 아이다.

머리를 잘 말리고 단정하게 빗어 고무줄로 예쁘게 묶었다.
겉옷 입히고 로션을 뿌려주며 거울을 보고 바르라고 했다. 입술에 보호제도 발라주고...
오늘 날씨가 많이 쌀쌀해서 마스크와 털장갑을 끼워줬다.

며칠 전부터는 아이 학교까지 안 바래다주고 혼자 가도록 가르치고 있다.
너무 과잉보호 하는 것도 아이를 어리버리하게 만드는 것 같아 일부러 그러고 있다.
"잘 다녀와~.",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ㅎㅎㅎ 짜식 이젠 인사도 곧잘 한다.^^




딸아이가 그저께 쓴 일기다.

나는 1학년 1반이다.
xx 초등학교 ^^
나는 항상 학교에 늦는다. ㅠㅠ
나는 학교에 혼자 간다.
그래서 친구 엄마가 "젠 혼자 간대"라고 얘기 하신다.

ㅎㅎㅎ 아직 1학년이라 띄어쓰기도 맞춤법도 엉망이지만 그날의 포인트는 꼭 짚었다.
저 날 아이에게, "애기하신다가 뭐냐? 얘기지..."라고 분명히 말을 했는데 안 고쳤네...^^
Q 비슷하게 두 개를 써놓고는 "이게 제 사인(sign)이에요~~~." 귀여운 녀석...


나에겐 휴일이 따로 없다.
아이와 딸랑 둘이 사는 홀아비라 잠을 자는 시간에도 중간에 자주 일어나 아이가 걷어찬 이불도 잘 챙겨야하고, 혹시라도 아이가 아픈 날이면 밤을 새우는 날도 많았다.
평일 지금 아이가 학교에 잠시 가 있는 이 시간만이 나에겐 유일한 휴식시간이다.
휴식시간이라고 해도 길지가 않다. 아침에 어질러 놓은 것 설겆이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가끔 장도 보러 나가야 하고... 요즘은 진짜 블로그 운영도 빡세다.

하루하루가 고단하다. 고단하다는 게 힘이 든다는 것 뿐이지 불행하다는 건 절대 아니다.
홀아비라고 하니까 색안경을 끼고 나를 보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3년도 넘은 예전에 아이와 나, 그리고 아이의 엄마를 위해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꼭 같이 살아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다. 이별이 더 행복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이혼을 무작정 반대하는 분들도 많다.
아이 엄마가 흉기를 들고 아이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인데도 이혼을 극구 반대할 것인가?
우울증이라는 병이 참 무섭다. 의심증, 의부증... 심지어는 자학까지...


지금이니까 이력이 붙어 그나마 살림도 수월하고 가까스로 주부 초보는 넘겼지만,
이혼할 때만 해도 힘이 너무 들어서 입에서 매일 단내가 났다. 아주 살이 쏙쏙 빠졌다.
아...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 시절을 버텼는지 모르겠다. 나 스스로도 대견하다.

아이가 너무 어려 변기에도 혼자 못 올라가니 아이 쉬가 마려울 때마다 앉혀줘야 했고,
홀아비 냄새 안 풍기려고 나도 아이도 매일 샤워하며 아침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어린이집까지 배웅했다. 몇 십원 몇 백원 아낀다고 먼 거리 발품 팔며 장을 보는 것은 기본이었고, 튿어지거나 구멍난 옷은 세탁소에 안 맡기고 침침한 눈 비벼가며 직접 바느질을 했다.

평일엔 아이가 집에 돌아오거나 주말인 토, 일요일엔 온종일 아이와 씨름을 해야 했다.
식구라고 딸랑 둘이라 아이가 너무 외로울까봐 혼자 두고 아이 옆을 떠날 수가 없었다.
먼 거리 장을 보러 갈 때도 아이와 산책 겸 같이 손을 잡고 걸었다.
덕분에 아이는 많이 걸어서 아주 건강하다.
여름방학 땐 꼭 동물원 한 바퀴 걸을 계획이다. 어른이 한 바퀴 돌아도 두 시간 거리를...

난 잠귀가 너무 밝아 옆에서 누가 조금만 부스럭거려도 잠을 깬다.
거의 불면증 환자나 다름 없다. 수면제 대용으로 매일 저녁 밥 대신에 소주 몇 잔 마신다.
술을 끊으려고 안 마시며 한 3일을 버틴 적이 있었는데 꼬박 3일 잠을 한 숨도 못 잤었다.
3일 째, 아이 어린이집에서 집으로 데리고 오는 길에 눈앞이 어질어질 현기증이 났다.
이거 건강도 중요하지만, '내가 쓰러지면 아이 누가 돌보나?'하는 걱정이 앞섰다.
어제도 소주 몇 잔 마시고 술기운을 빌어 겨우 몇 시간 눈을 붙였다.

내가 매일 술을 마시니 블로그 이웃분들이 많이 걱정하신다.
고맙고 감사하다. 그 심정 나도 잘 안다. 그러나 나도 살아 남아야 아빠 구실을 할 수 있다.
날이 풀리고 날씨가 좋으면 아이와 같이 또는 혼자서 약수터를 다닐 것이다.
날씨가 안 좋아도 약수터 가라고? ㅎㅎㅎ 만약 내가 다치면 누가 살림을 하라고? ^^
뭐 대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실험정신으로 도전을 하지, 난 혼자인데...
난 다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다쳐선 안 될 홀아비이기 때문이다.
그냥 아이가 성인이 되어 자식 낳고 잘 사는 모습만 볼 때까지라도 살기를 바란다.
아이에게 짐이 안 되고 늘 도움이 되는 아빠의 존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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