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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하고 씁쓸했던 칠순 잔치

하수의 일상 | 2010. 4. 27. 11:18 | Posted by 하수


지난 토요일엔 집안의 경사가 있었다. 다름 아닌 작은아버지의 칠순 잔치.
3남 1녀 중 막내인 작은아버지는 나와 공통점이 참 많다.
홀아비, 막내, 심지어는 내 고등학교 선배이기도 하다. 서울 대방동의 S공고라는...^^

나처럼 같은 홀아비지만 똑같은 처지는 아니다.
나는 딸아이와 같이 살지만, 작은아버지는 세 명의 자식들 그리고 처에게 버림을 받았다.
내 큰아버지, 고모, 아버지가 보시기에 막내 동생은 참 가엽고 안쓰러운 존재다.
그런 막내가 외롭게 혼자 살면서 이젠 칠순이 넘어 관절도 시원치가 않아 제대로 앉지도 못 하는 걸 보면 같은 식구였던 형제들이 얼마나 마음이 애절하겠나...

사실, 큰엄마와 고모부도 이미 돌아가셔서 부부가 같이 지내는 쪽은 내 부모님 뿐이다.
어차피 나중엔 모두 솔로가 된다지만, 작은아버지는 너무 빨리 혼자가 되어서 외로움을 많이 타신다. 모임에 자주 가고는 싶은데 몸이 따라주질 않아서 그냥 방콕할 때가 많다.

그 옛날 고속도로도 없던 시절에 할아버지와 같이 지프차를 타고 사냥을 다니시던 부잣집 막내 아들였던 작은아버지. 나름 유머도 풍부하고 인기도 많았지만 은근히 성격이 괴팍해 조카인 우리들은 가끔 공포를 느끼기도 했었다. 나 어릴 적엔 까불다 엄청 많이 맞았다.^^

세월이 변해서 이젠 내 97년식 자동차에 겨우 힘들게 몸을 싣는다.
괴팍했던 작은아버지, 이젠 내 우렁찬 잔소리에 '깨갱' 거리신다. 전세가 역전되었다는...



경기도 안산 신도시에 위치한 오페라 하우스 웨딩홀 뷔페를 힘들게 도착했다.
뭔 차가 그리도 많은지 지하 5층에 한 30분을 걸쳐 간신히 주차를 하고, 짜증나게 층층마다 서는 엘리베이터를 한참을 타고는 10층 꼭대기에 위치한 예약된 뷔페홀로 들어갔다.
같은 동네인 안산에서 같이 사는 나와 내 딸아이, 부모님, 작은아버지는 예약시간보다 미리 1시간 전에 도착해서 친척들을 기다렸다.

사촌 중 제일 고참인 사촌 누나가 남편, 막내 아들과 함께 제일 먼저 도착을 했다.
이 누나도 쉰이 넘었고 매형은 내일 모레가 환갑이라는데... 참... 말이 다 안 나온다.
세월 참 많이 흘렀나보다. ㅎㅎㅎ 세월이 야속하더라~~~ ^^
첫째 아들은 군대에서 제대를 했다며 어쩌구 저쩌구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이어서 도착한 고모와 고종 사촌들...
고모부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우울증에 걸리셨다는 고모를 보고 가볍게 포옹을 했다.
든든한 아들마저 이민을 가고 두 딸에게 의지하며 외롭게 사시는 고모를 보니, 가슴 속이 울컥했다. 이민으로 생이별을 하는 사람들의 속사정 난 도무지 이해를 못 하겠다.
나중에 남는 건 가족 뿐인데 왜 이별을 하며 사는 건지...

조금 늦게 도착한 형네 식구들, 형과 형수 그리고 내 유일한 조카인 아들.
조카 이 녀석 이제 중3인데 키가 180을 훌쩍 넘었다. 어릴 때 빨리 크는 집안 내력이다.
친가쪽으로는 내 딸아이와 이 녀석만이 사촌이라 둘 사이 애정이 남다르다.
중3과 초딩 1학년의 차이... 사실 너무 큰 차이라 같이 놀아주는 것도 많이 유치할 텐데 가끔 만나면 둘이 엄청 잘 논다. 기껏해야 숨바꼭질, 뿅망치로 노는 참참참 수준이지만...
나중에 식사를 마치고는 조카녀석이 내 딸아이를 데리고 아래층에 위치한 아울렛 매장을 다녀왔는데, 다름이 아닌 내 딸아이의 구두를 사줬다. 마음씨도 고운 녀석...
용돈을 모아서 군것질은 안 하고 유일한 사촌동생의 구두를 사주는 조카녀석, 사랑한다~.

또 이어서 도착한 우리 집 대빵이신 큰아버지와 사촌형 내외.
헐... 큰아버지 진짜 정정하시다. 내일 모레 팔순인 분이 머리숱이 까맣다.
나보다 흰머리가 없으시다. 같이 다니면 나보고 형이라고 할 수도...
주위를 둘러보니 환갑에 가까운 사촌매형과 나만 머리가 희끗희끗하다. 염색을 해야하나?

사촌 중 제일 막내인 귀여운 사촌 여동생이 남편과 아이 둘과 함께 등장을 했다.
만날 어리게만 보이던 녀석인데 이 녀석도 이젠 40줄이다. ㅎㅎㅎ 세월 참...
나보다 결혼을 한참 일찍해서 두 아이들이 많이 컸다.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나와 인상이 비슷해서 마음이 끌렸다던데...^^

딸아이가 이젠 생선회의 맛을 알았다. 육회도 잘 먹고, 초밥도 잘 먹고...
예전에 부모님댁을 놀러갔다가 멍게 조금을 사서 간식처럼 맛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이후에는 자주 '멍게타령'을 했었다. "아빠, 여긴 멍게 없어요?", "짜식, 뷔페는 멍게 없어~."
다른 아이들은 아이스크림과 탄산음료만 먹던데 내 딸아이는 사촌오빠와 같이 여러 음식을 접시에 담아왔다. 중간에 마구 뛰어 놀며 소화를 시키다가 다시 또 한 바퀴를 돌고...

맨 마지막에 도착한 두 번쨰로 나이가 많은 사촌누나 내외.
이 누나도 이젠 나이가 먹었는지 눈가에 주름이 잔득이다. 옛날엔 무지 예뻤는데...
이 매형은 엄청 잘 나가는 외국계 의료회사 CEO인데도 진짜 너무 겸손하다.
나와 나이차가 꽤 나는데 아직까지 나한테 존댓말을 한다. 아... 내가 너무 무섭게 생겼나?

친척들이 아주 오랜만에 모이니 웃음보따리인 이야기거리가 아주 많았다.
차를 그랜다이저로 바꿨다느니, 남편이 골프 무슨 자격증을 땄다느니...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도 아주 많았다. 그냥 이럴 땐 조용히 듣고 있는 게 상책.
난 가끔 아이와 골프 게임 '팡야'만 즐기는 수준이다.
96년도인가? 회사 다닐 때 미국으로 출장 가서 골프장 한 번 가본 게 전부다. 97년식 나의 애마 '아반테'도 20년을 채울 계획이고 나중엔 처분하던가 더 작은 차로 바꿀 예정이다.

즐거운 모임을 갖고는 다시 이별을 고하며 친척들과 인사를 나눴다.
다시 원래대로 부모님과 작은아버지, 내 딸아이와 나는 내 차를 탔고, 먼저 부모님댁에 들러 부모님부터 내려드리고 다시 작은아버지를 혼자 사시는 원룸에 모셔드렸다.
왁자지껄했던 즐거움도 아주 잠시였다. 다시 원래대로 씁쓸한 외로움의 시작...

집에서 한 5분 거리에 주차를 하고는 뒷좌석에서 잠이 든 딸아이를 깨워 손잡고 집으로 향했다. 도착한 시간이 9시 30분이 훌쩍 넘어서 후다닥 이불부터 깔고 아이를 재웠다.
심한 불면증 환자인 난 소주와 마른 멸치, 고추장을 꺼내 또 외로움을 달랬다.
미소를 짓고 잠이 든 아이를 쳐다보며 나도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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