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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둥이 딸내미 이제 다 컸네

하수의 일상 | 2009. 4. 3. 16:12 | Posted by 하수

재작년 이맘 때 당시 만3살 딸내미와 본가에서 조금 먼 곳으로 독립하여 이사를 왔었다.
본가 부근에서 사니까 애 할머니 아침마다 반찬 챙겨오시고 이래저래 고생이 심하셨다.
"홀아비 된 게 부모죄가 아닌데, 이러다 노인네 병 나시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버스 두 번 타야 올 수 있는 동네로 이사를 온 것이다.
이사 전에 일단 짐을 줄였다. 피아노, 침대, 옷걸이행거 등등.
전세값이 많이 올라 더 적은 평수로 이사가는데도 돈이 더 들었다. 집안 평수가 작아야 살림하는 동선이 짧아진다고 생각했고, 살림 초보라 서툰 솜씨로 살림하려면 그 게 유리하겠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여윳돈도 없었다. 사회생활 15년 동안 모은 돈 싸그리 모아 금리 제일 좋은 곳에 나누어 예치했다.
정식으로 직장을 다닐 시간도 없지만 애한테 소흘히 대하고 싶지도 않았다.
은행 이자 조금 나오는 것으로 생활비 보태고, 집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조금씩 했다.
불경기 악화로 요즘은 일감이 전혀 없다. 문의전화 한 통도 안 온다. 방법이 없다. 그냥 극빈모드로...
이사 오기 한 달 전에 미리 부근의 시립어린이집에 등록을 했었는데 운 좋게 이사 온 날, 다음 날부터 등원이 가능하다는 허가 전화가 와서 애도 심심하지 않고 나도 이삿짐 정리할 시간이 생겨서 너무 좋았다.
당시엔 애가 변기에도 혼자 못 앉아서 때마다 들어주고 했었는데, 그 덕분에 난 살이 엄청 빠졌다.
지금이야 혼자 대변보고 뒤처리까지 알아서 한다. 치약도 혼자 알아서 짜고...
오늘 아침에 샤워시키려는데 뒤태가 이젠 여자답다. 늦둥이 어린 딸내미 언제 키우나 했었는데...
홀아비 냄새 난다고 할까봐 한겨울에도 매일 샤워한다. 애가 이젠 샤워를 즐길줄 안다.
나야 매일 머리 감지만, 애는 머리가 길어서 말리는데 시간이 너무 걸려 아주 자주는 못 감긴다.
작년부턴 사진처럼 머리 집게를 쓰는데 너무 편하다. 그 전엔 어떻게 씻겼나 싶다.
무덤덤한 아빠와 달랑 둘이 사니 엄청 힘들기도, 외롭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도 볼 때마다 안쓰럽다.
말을 잘 안 들을 때는 애한테 매를 안 들고 대신 기합을 주는데, 기합 받느라 어깨 근육이 장난이 아니다.
기합이 예전엔 손들고 벽보기, 요즘은 엎드러뻗쳐. ㅠㅠ;;
딸내미의 사촌이라고는 친가쪽만 있는데 그나마도 달랑 사촌오빠 하나다. 자주 만나지 못 하지만 애정이 각별하다. 사촌오빠가 중학생이라 나누는 대화는 별로 없고 그냥 술래잡기 놀이하는 수준.
부모님 외로우실까봐 처음엔 주말마다 본가에 갔는데, 애가 하도 나대니 노인분들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아서 그 다음부턴 2주에 한 번씩 가서 점심먹고 온다.
이혼한 애엄마는 한 달에 한 번 애보러 우리집에 와서 점심과 저녁을 먹고 가는데, 이번 달은 내일이다.
그리고, 2주에 한 번씩 가는 본가, 가는 날은 내일 모레.
애가 오늘 아침엔 노래를 부른다. "한 번 자면 엄마 오고 한 번 더 자면 할머니, 할아버지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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