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내 딸아이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친구 중에 이 안 닦고 온 친구가 두 명 있어요."
아침에 칫솔질을 안 하고 온 친구가 두 명이 있다는 얘기였다.
흠... 칫솔질조차도 할 시간도 없다면 그럼 아침밥은 먹고 학교 간다는 것인가?
딸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며 하교시간이 너무 일러서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외로울까봐 방과후 교실에 등록을 했다. 그 다음 날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급식이 4월부터 시작이라 방과후 교실을 보내시려면 도시락을 싸주시던가....."
컥... 아이에게 찬밥을 먹이라고? 내 상식으로는 절대 동의할 수가 없었다.
3~5월 동안의 기간이었는데 난 그냥 등록 리스트에서 빼달라고 했다.
보육교사가 그럼 혹시 중간에 전학을 가는 아이가 있을지 모르니 후보에 올려준다고...
아이의 초등학교 짝꿍은 아이가 몇 년 동안 다니던 어린이집의 절친한 친구다.
그 친구는 방과후 교실을 다니고 있는데 도시락을 안 싸가지고 온다고 했다.
그 교실은 오후 다섯 시까지인데 그럼 아침 대충 먹고 저녁시간까지 버티는 건가?
아이가 가끔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도 전해준다.
"오늘 아침 안 먹고 온 친구가 두 명이래요."
난 언제나 외치며 주장하고 있다. 식구들 아침밥 안 챙기는 주부는 살인자라고...
내 블로그에 처음 오시거나 날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나라는 놈을 간단히 소개하겠다.
나 하수는 딸아이와 딸랑 둘이 사는 홀아비다.
직딩일 때는 주식회사 지분보유 사내이사까지 지냈지만 이제는 아이를 위해 다 포기하고 아이의 보육에 전담하고 있다. 물론 나도 살림을 도맡아 하는 전업 주부다.
아이가 제 앞가림을 할 정도 대충 중학교까지는 다른 직업을 안 갖기로 다짐을 했다.
내 어릴 적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형과 누나는 나와 나이차가 있어서 같이 있는 시간이 적었고 부모님이 장사를 하시는 바람에 막내인 난 거의 혼자 노는 시간이 많았다.
학교 다닐 땐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다가도 집에 들어오면 늘 외톨이였다.
옛날이나 친구들과 뛰어 놀고 지냈지, 지금의 운동장은 썰렁하기만 하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아직 급식을 시작 안 해서 12시 10분부터 하교시간이다.
말이 12시지 아침에 힘들게 아이 보내놓고 아침에 어질러 놓은 것 설겆이하며 청소 좀 하고 잠시 앉아서 지금처럼 한숨 돌리면 12시 금방 된다. 아이고 허리야...^^
오늘 아침 아이가 알람 소리를 듣고 7시 30분에 일찍 일어나 난 서둘러 아침상을 차렸다.
난 빵과 우유는 식사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간식으로만 생각한다.
그렇기에 아침밥이 좀 해비(heavy)한 편이다.
습관이라는 게 어쩔 수가 없다. 나도 내 엄마한테 그렇게 길들여졌기 때문에...
일찍 서둘렀는데도 아이가 밥을 너무 오랫동안 먹어서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8시 40분까지 학교에 가야 지각이 아닌데, 겨우 씻겨 집을 나선 시간이 그 시간이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주부인가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머리 속엔 온통,
"점심 메뉴는 뭐로 하지?, 저녁엔 뭘 만들지?....."
냉장고 속에 있는 재료의 메뉴가 아니면 좀 이따 아이 귀가하기 전에 또 장도 봐야 한다.
내가 사는 게 고달파 보인다고?
아둥바둥 몇 푼 더 번다고 사는 게 더 고달픈 것이지...
넉넉하지 않더라도 나처럼 마음 비우고 여유롭게 사는 건 절대 고달픈 게 아니다.
매일 아이와 웃으며 지내는 시간이 나에겐 그 어느 것보다 힘이 나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행복이라는 것 부유와 아무 상관이 없다.
사실 부자들 사는 것 보면 행복보다는 불행해 보일 때가 많다.
난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성경에 이런 글이 있다는 게 기억이 난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뭐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난 저 글을 내 나름대로 적용하여 내 삶에 반영하고 있다.
'돈이 많아야 부자냐? 마음이 여유로워야 부자지...'
이런 글을 쓰면 또 오해하는 분들 꼭 계신다.
'네가 진짜 가난한 사람의 심정을 이해나 하냐?' 뭐 이러면서...
난 아주 극빈 모드는 아니다. 그래도 직딩 생활 거의 20년 해서 모은 돈이 있는데...
난 지금 아이와 딸랑 둘이 방 두 칸 2,500짜리 전세에 살고 있다.
통장에 돈을 좀 넣어놔 한부모가정에 해당이 안 되어 정부 보조금 없이 은행 이자로 산다.
남들이 아이에게 짜장면 시켜줄 때 난 집에서 아이에게 짜파게티를 끓여 준다.
남들이 길거리에서 아이에게 떡볶이를 사줄 때 난 집에서 떡볶이를 요리한다.
남들이 소풍 도시락 싸주기 귀찮아 김밥집에서 김밥을 살 때 난 집에서 도시락을 싼다.
남들이 돈을 번다며 아이를 할머니에게 맡길 때 난 아이를 직접 가르치고 같이 놀아준다.
남들이 외식한다며 아이와 나들이 할 때 난 아이와 한 달에 세 번 부모님댁으로 놀러 간다.
아이를 굶길거면 왜 낳고 키우나?
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일찍 일을 가야 될 형편이고 아침에 아이를 보살필 수가 없다면,
전날 미리 간단하게라도 아이에게 먹일 먹거리를 준비하자.
아이 출산했을 때의 기쁨을 늘 잊지 말자.
아이가 처음 "엄마", "아빠"를 불렀던, 처음 아장아장 걸었던 그 애절한 추억들도...
부모로부터 받은 깊은 애정, 그 반의 반만이라도 내 아이에게 전해주자.
내 아이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애정과 관심이다.
어느 동요가 생각난다.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마음이 아파서 그러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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