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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월급 없는 학원 선생인 아빠

하수의 일상 | 2010. 4. 14. 11:04 | Posted by 하수


무슨 백수가 학원 선생이냐고? 집에서 살림이나 하면서 웬 학원 선생이냐고?
나는 아이의 음악학원, 요리학원, 체육학원, 국어학원, 영어학원의 월급 없는 선생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을 학원에 보내지만, 난 집에서 간식도 주며 아이를 직접 가르친다.
여러 학원을 보낼 처지도 안 되지만 형편이 된다 해도 아이를 힘들게 하고 싶지가 않다.

솔직히 우리 어릴 때 공부 잘 했나? 밖에서 구슬치기, 딱지치기, 고무줄 놀이나 했지...^^



내가 매일 매일 요리하는 걸 딸아이가 지켜보며 아이 미래의 꿈인 요리사를 꿈꾼다.
투박하고 예쁘지 않게 요리를 하지만 딸아이에게만큼은 최고의 맛인 아빠표 요리다.
반찬 투정 한 번도 안 하고 언제나 맛있게 먹어주는 아이를 볼 때마다 고마울 따름이다.
월급 같은 거 전혀 필요 없다. 맛있게 먹어주는 게 어딘데...



언젠가 컴퓨터에 연결해 작동하는 음악 교육용 피아노를 아주 저렴하게 구입했다.
2009/04/29 - USB용 피아노 구입기

영어로 진행되는 소프트웨어인데 아이가 눈치껏 알아서 게임하듯이 공부한다.
위 화면은 8분, 4분, 2분 음표에 각각 해당되는 길이의 쉼표를 드래그하는 게임이다.
아이의 피아노 실력은 내가 악보에 적어준 계이름을 보고 그냥 하얀 건반만 누르는 수준인 젓가락 행진곡, 자전거, 학교종, 산토끼, 비행기... 뭐 이 정도다.
직접 아이를 가르치다보면 욕심이 안 생기냐고? 난 원래 욕심 없는 사람이다.^^

방과 후 간식 시간 전까지는 학교 숙제를 하고 다음 날 배울 교과서를 챙기며 가방을 싼다. 동화책 하나 정도를 읽게 하고는 자유롭게 놀으라고 한다. 아이는 방에서 훌라후프도 돌리고 공도 차고 TV(주로 엠넷)를 켜곤 장난감 마이크를 들고 춤추며 노래도 따라 부른다.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밥 먹고 후다닥 씻어 매일 학교 다니는 것도 아이에겐 스트레스인데 집에서까지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는 않다. 무슨 놈의 초등학교 1학년을 9시도 이른 시간인데 8시 40분까지 등교하라고 하는지 원... 내 욕심 같아서는 한 10시쯤 학교가 시작했으면 좋겠다. 물론 내 욕심이다. 맞벌이 부부들은 이런 나를 욕할지도 모르겠다.

국어는 그냥 학교에서 보내주는 숙제만 해도 충분하다. 받아쓰기 세 번 모두 100점...^^
체육? 가끔 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거나 약수터를 다녀오면 된다. 따로 필요가 없다.
영어? 지금 가르쳐봐야 하나도 소용 없다. 아직 학교에서 정식으로 안 배우니까. 아이와 TV를 보다가 가끔 모르는 외래어를 물어볼 때 단어를 적어주곤 사전을 찾아보라고 한다.

내가 그나마 신경을 좀 쓰는 과목은 수학이다.
다른 과목과는 틀리게 기초가 부실하면 자신감까지 없어지게 하는 과목이라 다소 엄하게 가르친다. 진짜 몰라서 틀리는 건 봐주지만 아는데 집중력 부족인 실수로 틀리면 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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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심남 A형, 딸아이는 활발녀 B형. 거꾸로가 아니라 천만 다행이다.
아이가 착해서 딱히 속을 썩이지는 않는데, 아이를 직접 가르치다 보면 진짜 속이 까맣게 타 들어갈 때가 있다. 큰소리로 혼을 내면 울상이었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딸아이의 얼굴은 금방 미소를 짓고 있다. '그래... 내가 속이 뭉개지는 게 낫지, 늘 웃으며 살아라...'

나도 아이에게 선생일지 모르겠지만 아이도 내 선생이 되곤 한다.
몇 해를 살지 않아 경험도 없지만 그만큼 떄도 묻지 않아 아이의 선한 눈을 보며 인생을 배운다. 가끔 아이를 보며 내 스스로 한탄을 할 때가 있다. '아... 나 너무 헛살은 것 같아...'

매일 매일 나의 인생을 깨우쳐주며 챙겨주는 아이에게 늘 고맙다.
매일 매일 외로운 나를 위로해주며 즐겁게 해주는 아이가 있어 늘 행복하다.
딸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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